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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재 지킴이('07.7.26, 9.27)
등록일 2008-02-13 조회수 9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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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문화재 1지킴이(07.7.26, 07.9.27, 대구지원)


  대구지원 사회봉사단원들은 사회봉사활동의 일환으로 1문화재 1지킴이 운동에 참여하기로 하고 대구 인근의 문화재인 도동서원에 대한 문화재 지킴이 봉사활동을 실시하였다. 도동서원의 관리소장과 협의하여 도동서원과 서원 주변에 대한 청소 및 정리정돈 등 정화활동을 실시하였으며, 앞으로도 격월 1회씩 실시할 계획이다.


도동(道東)서원은 김굉필*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선조 원년(1568년) 처음 세워 쌍계서원이라 불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져 선조 37년(1604년) 사당을 다시 지었고 선조 40년(1607년)에 임금님이 직접 도동서원이라고 쓴 현판을 하사받았다.


* 김종직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워 조광조에게 전수하였으며, 형조좌랑 등을 역임. 1504년 갑자사화로 극형에 처해졌으나 1517년에는 우의정에 추증. 1610년 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 등과 함께 5현으로 문묘에 종사됨


 행사와 교육의 중심 건물인 강당은 앞면 5칸·옆면 2칸 반 규모이며, 제사지내는 공간의 중심 건물인 사당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로 김굉필 선생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강당을 둘러싼 담장은 기와를 이용해 쌓은 흙담으로 구성하여 매우 아름답다. 강당과 사당, 그리고 이에 따르는 담장 등은 보물 제350호(도동서원 강당 사당 부장원, 道東書院講堂祠堂附墻垣)로 지정되어 있다. 서원을 수문장처럼 지키고 있는 400여년된 은행나무가 있는데 서원이 사액(賜額) 된 것을 기념해 성리학자인 정구(鄭逑)선생이 손수 심은  것이라 전한다.


※봉사활동 후기 : 도(道)는 동쪽에서

   (2007.9.27.  도동서원 문화지킴이 활동을 마치고)


- 시간은 흘러 흔적을 남기고 -


  대도시 외곽에도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의 한적한 길을 접어서자 목적지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왔다. ‘도동서원* 8km’. 상당히 먼 거리를 왔음에도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게만 느껴지는지 사람들은 ‘이런 골짜기에 서원이 존재한다는 것이 놀랍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등과 더불어 조선 5현으로 조선 성리학의 정통을 계승한 김굉필을 기리기 위한 서원


  그러나 도착해 보니 오히려 서원은 사람의 간섭이 없는 순수한 곳에 위치한 느낌이 들었다. 강원도 태백에서 시작하여 경상도 지방을 두루 거쳐 남해로 흘러간다는 강의 전설처럼 한때 외국과의 교역이 성행한 포구였다는 마을은 지금 안식의 시간을 누리고 있는 것일까. 고요해서 편안하고, 또 강이 있어 정감이 가고, 게다가 400년 된 은행나무 자태는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시간도 분명 흘러가기에 시간의 흔적은 고목의 향기로 느껴지는지. 


- 사람들은 왜 땅만 보려 하는가 -


  문화재지킴이인 한진우 씨를 찾아가 일거리를 물어보자 할아버지는 ‘일단 내 이야기를 들어보라’며 서원의 핵심인 강당과 서당 등을 보여주시고, 지난날 도난당한 문화재에 얽힌 이야기에 힘을 실어 말씀해주셨다. 홀로 있음이 외로웠는지 일거리를 달라는 우리의 관심사는 완전히 배제된 것일까?

  게다가 문화해설사인 천광호 씨가 덧붙여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었던 한국문화의 맥을 유감없이 설명하자, 우리의 요구사항은 봄눈 녹듯 사라지며 해설사의 설명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경주와 안동에 널려있는 문화재에 밀려 주목받지 못했으나, 강당의 돌 쌓은 기술만으로도 이름난 세계유적*과 견주어 손색이 없다는 사실에 눈뜨고 있어도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다면 장님과 또 무엇이 다른지.  


  * 돌의 귀퉁이에 각을 내고 서로 이어 맞춘 구조로 전통목가구의 ‘반턱이음’과 상통하는 것으로 돌을 쌓은 방식이 앙코르와트나, 잉카문명(마추피추)의 수법보다 뛰어남. 


- 강물은 또 흐르고 -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 속에 중정당(中正堂) 누마루에 앉아 있노라니 흐르는 낙동강 한줄기에, 나는 학문을 위한 공간 속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술 한 잔이 간절한  꿈을 꾸고 말았다.

“권력자의 오만을 견제하는 것은 양심을 가진 지식인의 책무라고 주장한” 주인은,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 떠나가고, 서원철폐라는 변혁의 시대를 견디며 수백 년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도동서원은 이제 긴 잠에서 깨어나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문화재지킴이로서 그 역할이 미흡했다는 반성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문화유산을 다시 재발견했다는 감정이 교차하면서, 배우고 느낀 만큼 앞으로 더 문화재에 대한 애착과 노력을 기울일 수 있으리란 생각은 나만의 것이 아니리라.

담당부서 대외업무팀 담당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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